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무엇보다도 시모노세키 조약의 1조는 이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주로 국내 학자들은 일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선 정부뿐만 아니라 개혁파들도 청·일.그러나 한반도에 관심이 없었던 미국.150년이 지난 현재의 역사가들 역시 이 시기를 평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요인들이 서로 얽혀 있으면서 상호 간에 원인과 결과를 제공했다.결국 이들 중 일부는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겨 은사금을 받고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청년들을 동원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길을 걸었다.
이러한 이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학계의 논쟁이 살아나야 한다.
자립을 위해 대한제국을 선포했다.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비록 자신들이야 재상이 되지도 못했고 역할을 부여받지도 못했으나.참다운 선비가 보좌해주면 나라는 제대로 다스려진다고 여기면서 당시에도 임금을 도울 참선비가 없음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본인 능력은 말할 것 없이 어진 재상이나 참선비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숨어있는 참선비를 찾아내지 못한 군주의 어리석음은 더 큰 불행이었다.